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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가면라이더크오합작 으로 쓴 단편입니다. 합작 페이지는 이쪽입니다. https://tokusatsucrossover.creatorlink.net/


The game of God

 

 

※ <신의 퀴즈> 측 등장인물 국적상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는 로컬 설정으로 진행했습니다.

※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및 <신의 퀴즈: 리부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또한, <신의 퀴즈> 시즌 1~4의 스포일러도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살인 사건에 관한 묘사가 일부 존재합니다. 감상에 유의 부탁드립니다.

 

 

“……한 선생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에이. 그 말 몇 번째예요. 걱정 하덜덜 마셔요. 내가 누구냐. 후엠아이?”

“네, 네. 불세출의 석학 한진우 박사님. 참고로 한 선생님 걱정한 거 아니고요. CR 분들한테 누라도 끼칠까 걱정돼서 한 말이에요. 착각하지 마세요.”

‘한국대병원 법의관 사무소’의 사무실. 소장인 수안은 손을 가만히 모은 채로 거만하게 서 있는 진우를 바라봤다. 사무소의 2대 소장이 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그 전부터 진우와 같이 일해 온 동료로서 수안은 진우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새로운 분야의 의사들을 만난다는 설렘 반,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하고픈 마음이 사 분의 일, 그리고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 분의 일 정도일 것이다.

수안의 차가운 말(?)에 진우는 수안의 명패를 만지작거리다가 얼굴을 팍 구겼다.

“거 참, 응? 잘 다녀오라고 하지 못 할망정 사람이 그렇게 야박하게 굴 수가 있어요. 너무하다, 증말.”

“농담으로 한 거고요. 그래서 강 형사님 도착하시면 가시게요? 정말로 제가 안 따라가도 돼요?”

“에, 딱히요? 뭐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 멋진 문 소장님 부르겠지만, 우선은 사건 현장부터 확인하고요. 분석할 시안이나 자료 있으면 동근 씨 통해서 넘길게요. 아, 그리고 네. 강 형사님 오면 갈 거예요. 환경 생각해서 같이 타고 갈 거라.”

“환경 생각하실 거면 차라리 버스나 지하철을 타세요.”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냐는 듯 수안이 피식 웃었다. 어라, 이 사람 좀 보게? 진우는 눈을 부라리는 체를 했지만 수안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무려 영실이 인정한 후배이자, 제 2의 한진우─당연하지만, 수안은 이 별명을 싫어해서 진우의 입에 그 단어가 오르내릴 때마다 레이저 눈빛을 날려대고는 했다.─라고 불리는 노력형 수재이자, 한국대 법의관 사무소 2대 소장이었다. 진우가 밀리면 밀리거나 쫄면 쫄지 결코 물러설 인물이 아니었다.

수안은 진우가 답이 없자 눈을 가늘게 뜨며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역시나 이 사무소의 소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진우는 괜히 머쓱한 얼굴을 하며 허공에 팔을 휘적거렸다. “아니 뭐, 그냥 그렇게 알아들으세요.” 진우가 허우적거린 끝에 덧붙인 한마디를 듣고 수안이 헛웃음을 지었다.

“알았어요. 강 형사님이랑 조사 갈 겸 드라이브하고 싶은 거…… 는 모른 척해드릴게요. 두 분 며칠 좀 쉬시라니까 나오셔서는. 안 쉬어도 괜찮은 거 맞아요?”

“네. 괜찮다니까요.”

[거짓말, 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낮은 남자 목소리에 수안과 진우의 눈이 커졌다. 진우는 목소리를 듣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헤이 주원, 내가 음소거 모드로 해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문수안’과 ‘한진우’의, 사회적 관계, 분석. 문수안, 박사, 가 한진우, 박사님보다 상사인 것을 확인. 감정 분석 프로그램과 윤리 모듈을 작동시켜……]

“결론은 한진우 박사님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아니, 뭐, 그게. 아이, 참. 멋진 척 좀 하려고 했는데. 왜 그거 있잖아요. 공익을 위해 열심히…….”

“그건 좀 그립지 않고 빡… 치는 대사인데요. 한 선생님?”

“누, 누구 대사?”

“전(前) 코다스 팀장 곽혁민이요?”

익, 소리를 내며 진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꼭 종이를 꾸깃꾸깃 구겨놓은 것 같은 표정에 수안이 다시 진우를 비웃었다. 진우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 사람 이야기는 왜 또 해요!”

“아니, 그냥. 사심이 있는데, 없는 척 이야기하는 게 곽 선배랑 좀 닮아서?”

“아, 그래요. 사실 휴가 가고 싶었는데 우리 집 바깥양반이 안 된다고 해서 나도 따라서 못 갔어요. 신혼여행을 나 혼자 갈 수는 없잖아요. 이제 됐어요? 사람이 말이야. 고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떡볶이 국물 안 찍은 간 같아. 퍽퍽해, 어유.”

진우는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사무소장 책상 옆의 소파에 앉아 다리를 끌어모았다. 와중에 신발은 또 벗고 발을 올린 게 기특하고 웃겨서 수안은 웃음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안은 의자를 돌린 후,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저기요. 한 선생님?”

“아, 왜요.”

진우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수안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얄미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번 사건 끝나면 휴가 좀 써드리려고 했는데 듣기 싫으면 마시든지요.”

뚱한 얼굴을 하던 진우가 무릎을 껴안은 채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팔을 또 허우적거렸다.

“아니, 그, 사람이 이유를 물으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게 도리 아닌가? 응?”

“엄-청 가고 싶으셨나 보네요. 휴가 소리에 벌떡 일어서시는 거 보면.”

“에이, 휴가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요. 나만…… 나만 그런가? 이상하다? 놀고 싶은 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일 텐데?”

“언제 심리학까지 공부하셨대요? 됐고요. 저 지금 한 선생님 따발총에 귀가 아프니까 만담은 여기까지 합시다? 자, 그래서 제가 드린 자료는 다 보셨어요?”

“내가 다 안 읽었으면 이렇게 소장님이랑 농담 따먹기 안 하죠. 그나저나 희귀병과 게임병이 얽힌 사건이라니. 이거 묘-하게 복잡해질 거 같은 냄새가 나는데. 킁킁.”

“묘한 게 아니라 대놓고 냄새가 나죠. 이거는.”

“흠. 그래서 문 소장님이 CR 측이랑 협조하자고 한 거예요? 게임병 관련 논문은 나도 수십 개 읽어봤는데. 꼭 협조 수사가 필요한 건가?”

진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신경외과 석학 출신의 의사가 보기에, 게임병은 인간의 신경 조직, 혹은 구조와 무관한 병이 아니었다. 물론 감염 경로는 조금 다른 듯했지만, 논문들을 보건대 명백히 ‘인간의 스트레스’가 게임병을 악화하는 원인이었다.

“그쪽에도 부검의가 있는 듯하지만, 거기에도 뭔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나 봐요. 아니면 신경외과 출신인 한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그리고 말해두는 거지만, 이번 사건에서 CR 측에 협조를 부탁한 건 본원이에요. 뭐, 우리 쪽에 게임병 전문가가 없기도 하고 게임병 이슈에 관한 케이스는 그쪽에 더 많으니까. 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한 선생님은 다른 과랑 협진하신 적은 많으실 거 아니에요. 그렇죠?”

수안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진우는 말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의사들에 따라 자부심 때문에 다른 과 의사들과 협진을 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봤으나, 그건 의사로서의 프라이드가 아니라 아집에 불과했다. 진우는 그런 면에서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환자의 생명이 더 중요하고, 특히 희귀병 환자들은 원래 가진 병으로 인한 합병증이 있는 케이스가 많았기에 더더욱 여러 관점에서의 치료가 필요했다.

“예, 뭐. 본원 쪽의 판단이 맞기도 하고, 이렇게 결정이 빨리 난 거 보면 경찰 측에서도 승인이 난 모양이죠?”

“말씀하신 대로예요. 사건 해결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은 것과 별개로 수사 전의 절차 진행은 꽤 빨리 되고 있어요.”

“이걸 고맙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우는 수안의 책상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원과 경찰이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을 내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제로데이’ 때 정부에서 제대로 사건을 수습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고 사실을 은폐시킨 것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남아있었고 아무리 게임병 치료제가 보급 단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불안감과 의심이 증폭된다면 정부도 그렇고 의료진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터다.

“이 사건이 언론에 얼마나 뿌려질지는 미지수지만 누군가는 공포감을 조성해서 이득을 얻으려고 할 거고.”

“다른 한쪽은 막으려 하겠죠.”

수안과 진우가 뒤돌았다. 사무실 문틀에 경희가 기대어 서 있었다. 경희는 살짝 웃더니 둘에게 다가갔다. 진우의 표정이 확 폈다.

“자기야. 언제 왔어요.”

“오늘따라 왜 이러신대? 방금 왔어요, 방금. 서류 처리할 것도 있고 임 형사랑 남 형사님한테도 지시 내리고 오느라 조금 늦었어요.”

“늦긴요. 마침 잘 오셨어요. 한 선생님이랑 대화하느라 아주 진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강 형사님은 도대체 어떻게 참는 거예요?”

“뭐, 시간 지나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책상에 비스듬히 기댄 진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수안과 경희를 바라봤다. 진우는 팔짱까지 끼며 가만히 둘의 대화를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뭐지? 내가 막… 엄청난 문제아가 된 기분인데?”

“에이, 문제아는요. 한 선생님이랑 문 소장님 성격이 다르니까 서로 익숙해지라고 한 거예요. 자, 가실까요?”

경희가 진우의 팔을 끌어안았다. 금방이라도 투덜거릴 듯 잔뜩 내밀던 진우의 입이 쏙 들어갔다. 진우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퍼지며 허허, 웃는 것을 본 수안이 혀를 내둘렀다. 연구관 시절에도 느낀 거지만, 이 통제 불가 자유분방 주둥아리의 소유자 한진우 박사를 다룰 사람은 전(前) 법의관 사무소장 영실과 진우의 아내이자 특수수사 2부 팀장인 경희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수안은 관자놀이를 짚고 신에게 비는 것처럼 영실에게 빌었다. ‘아, 언니. 왜 저한테 이런 중책을 넘기셨나요.’하고.

 

 

회진을 돌고 온 명호는 인준과 세한이 CR에 같이 모여 있는 것과 뽀삐가 없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세한이나 뽀삐는 그렇다 치고 이 시각이면 인준은 한창 바쁠 시각인데 한가롭게 마카롱을 완벽하게 갈라서 먹는 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저, 세한 씨. 뽀삐는요?”

“아, 한국대병원 법의관 사무소 쪽 촉탁의랑 경찰 쪽 사람도 오기로 해서. 마중 갔어.”

네? 명호는 놀란 투로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인준은 입에 묻은 크림을 닦더니 명호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명호는 얼른 서류를 앞뒤로 넘겼다. 그리고는 그 서류의 내용이 특정 환자의 진료 기록이나 상태를 기록한 것이 아닌, 사건 파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명호 옆에 서 있던 세한이 턱짓으로 서류를 가리켰다.

“보면 알겠지만,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실종됐는데, 이게 게임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우리 측에 연락했어.”

“그, 그러니까. 사망한 사람은 있는데 범인은 없다, 이건가요?”

“뭐, 제1의 용의자가 사라졌다는 거지 다른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한테 의견을 구하고 수사에 협조해달라는 부탁이야.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받아들인 거라 이 말씀이지.”

“시완 씨랑 나희는요?”

“거기는 할 일 하고서 참여한다고 했어. 거기 아주 문전성시라더라. 대박 났대.”

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다 생각에 잠겼다. 한국대병원이라면 성도대병원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대학병원이었다. 게다가 명호가 알기로는, 한국대병원 법의관 사무소는 본원을 제외한 법의관 사무소 중에서도 특히 희귀병과 관련된 사건에 독립적 수사 권한을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그럼 저희는 뭘 하면 되나요?”

“일단 사건 현장에 나가보고 조사를 한 뒤에, 그쪽 법의관들이랑 우리가 정보를 교환하면 돼. 부검 권한은 그쪽에 있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이쪽에서도 조사에 힘을 보탤 수 있으니까.”

“사건 현장 근처에 버그스터가 있을 가능성도 제외할 수 없으니 동행을 안 할 수는 없겠군.”

파란색 마카롱을 잘라서 입에 넣은 인준이 덧붙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사건 현장 근처에 버그스터가 출현해서 조사를 방해할지 안 할지는 불투명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든 버그스터가 무고한 시민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CR 의사들이 한 명이라도 대동해야 했다.

“그럼 누군가 따라가기는 해야겠네요. ……그, 법의관 사무소에서 오신다는 촉탁의 분 성함이.”

“한진우 박사다. 한국대병원 신경외과 출신의 석학이고, 다른 외과 분야에서도 유의미한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고, 논문도 여러 편 작성한 거로 아는데.”

인준이 흘낏 세한을 바라보자, 세한은 슬쩍 인준의 마카롱 반 개를 입에 쏙 넣고는 커피를 마셨다. 저 커피 엄청나게 달 텐데 마카롱까지 드시는 건가. 명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세한을 보다가 굳은 얼굴을 한 채로 세한을 노려보는 인준을 보고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음, 맞아. 천재 중의 천재. 세기의 천재지. 카이스트 출신의 의사…… 기도 하고. 아마 네 또래 나이 때 이미 교수였을걸.”

“저, 정말요?”

명호의 눈길이 다시 인준에게 향했다. 거의 인준과 같은 천재라는 의미였다. 인준은 명호의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인준이 한 말에 당황한 건 명호가 아닌 세한이었다. 세한은 명호에게 ‘그 양반이 워낙 여러 고초를 겪은 양반이라 그렇다.’라고 얼버무렸다. 세한이 그렇게까지 당황하는 건 드문 일이었기에 명호는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뭐, 소문 들어보면 꽤 굵직한 사건에 얽혀있는 사람이더라고. 공식적으로도 징계도 몇 번 받았고. 아이, 그렇다 해도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자 하는 건 너어무 정 없는 소리지. 안 그래?”

인준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명호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각자 말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 같았다. 인준과 시완과 세한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도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 명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나 비밀은 있고, 비밀에 영향을 받는 게 사람이었으니까. 명호는 당장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파라드. 명호는 작게 속삭였다.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의사로서 버그스터 바이러스와 싸우는 일도 온전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명호는 살짝 웃더니 허리에 손을 얹었다.

“전 그분이 좋은 분일 것 같은걸요. 이번도 열심히 일하죠!”

“예에- 그런 태도 아주 좋아요. 안녕하세요.”

명호가 말하자마자 계단을 통해 누군가 올라왔다. 쉼표처럼 생긴 앞머리를 한 남자와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가 은설(뽀삐)의 뒤를 따라 올라왔다. 명호와 인준, 그리고 세한은 고개를 대강 숙여 인사했다. 진우는 손을 살짝 들어 인사했고, 경희는 고개를 까닥였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은설이 입을 열었다.

“이쪽은 한국대병원 법의관 사무소 촉탁의이신 한진우 박사님, 그리고 이쪽은 특수수사 2부 팀장이신 강경희 형사님이셔.”

“한진우 박사입니다.”

“강경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셋은 진우와 경희와 번갈아 가며 악수를 했고, 경희는 진우가 뭐라 말하기 전에 사건 브리핑을 시작했다. 진우가 입을 빼쪽거리든 말든 경희는 웃어넘기며 설명했다.

사건의 개요는 명호가 자료로 본 것과 비슷했다. 피해자의 사인은 질식사, 목에 졸린 흔적이 있었고 저항한 흔적 역시 현장 곳곳에 존재했지만, 범인은 보이지 않았다. 잠적했거나 도주했을 거라 추측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경찰과 사무소 측에서는 게임병으로 인해 소멸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세한이 자료를 보다가 한 손을 들었다.

“아,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범인이 ‘게임병으로 인해 소멸’했을 거라고 유추한 거죠?”

“오우, 굿 퀘스천. 역시 부검의 출신이라 그런지 머리 회전이 기가 막히시네. 잘 들어보세요. 아, 그 전에, 이거 좀 쓸게요. 쏴리.”

“앗, 네. 괜찮아요.”

목을 가다듬은 진우가 곁에 있던 화이트보드 판을 끌더니 마커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여는 소리가 꽤 경쾌했다. 뽀삐는 멍하니 진우가 마커로 써 내리는 것을 보았다. 피해자, 김성국, 만 43세, 공사장 관리직. 그 외에 여러 정보가 적혔다. 인준은 팔짱을 끼며 진우의 행동을 지켜봤고, 명호는 자료에 적힌 글과 화이트보드를 번갈아 바라봤다. 진우가 적은 대부분은 자료에 있는 내용이었다. 경희 역시 그것을 의식했는지 진우 옆에 서서 무언가를 속삭였다.

“아이, 참. 우리 강 형사님 성격도 급하셔라. 근데 다들 그 생각은 했을 거 같으니까 설명 시작할게요. 자, 자. 주목. 여기 있는 분들 다 의료계 종사자시니까 눈높이 설명 같은 건 필요 없겠죠?”

“뭐, 키가 달라서 눈높이를 맞추려면 내가 좀 숙여야 할 것 같긴 한데. 필요 없습니다-.”

“오, 방금 그거 은근 재밌었어요. 마음에 든다. 이름이 정세…….”

“부검의 정세한입니다.”

“그렇구나. 세한 씨라고 불러도, 아, 알았어요. 강 형사님 그렇게 좀 보지 마요. 나 심장 떨어져.”

진우와 세한이 농담을 주고받자 경희가 인내심이 다했는지 혀를 찼다. 진우는 시시덕거리다 경희의 눈치를 보며 마커로 글자를 가리켰다.

“김성국 씨가 공사장에서 발견됐다 했죠? 정확한 사망 추정 시각은 공사장 내 환경 때문에 알 수 없어요. 왜냐. 여름이라 습도도 높고, 또 주변 온도도 상당히 높았어요. 밤인데도 말이죠.”

“그럼 시신이 부패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몇 시간 정도 차이를 두고 추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정확하네요. 도, 명호 씨? 이야, 명호 씨 머리 좋다.”

“……하지만 제1 용의자인 이철민이 범인일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건,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까.”

인준의 질문에 진우는 마커를 들어 인준을 가리키더니,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진우는 뒤이어 화이트보드에 쓰인 ‘공사장’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는 ‘CCTV’라고 옆에 추가로 적었다.

“공사장에 CCTV가 없을 리는 없죠?”

“아, 맞아. CCTV.”

“에, 뭐, 관리 소홀로 안 달아놓거나 중간에 슬쩍 기록 지우는 양반들은 더러 있긴 한데 웬만하면 CCTV도 있고 근처에 댄 차가 있다면 블랙박스 기록도 있을 거예요. 문제는 공사장 CCTV는 딱 두 개고, 입구 CCTV에는 김성국과 이철민 말고도 한 명 찍혔다는 거예요.”

“그리고 확인해 본 결과로는 CCTV가 설치된 정문 말고도 입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후문 쪽에는 차도 없어서 블랙박스 확인도 힘들어요.”

경희의 추가 설명에 진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거예요, 진우는 맞장구를 치더니 공사장의 약도를 그렸다.

“후문 쪽은 완-전히 CCTV 사각지대고, 공사현장에도 CCTV는 하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사현장이 신도시 예정 지역이라 허허벌판이에요. 이건 즉, 뭐다?”

“살인이 일어나기 딱 좋다는 거네요. 으으, 삐뽀빠하다…….”

“삐뽀빠, 뭐요? 엥?!”

진우가 옆에 있던 은설을 돌아보자, 은설은 얼른 뽀삐 삐뽀빠뽀의 코스튬으로 갈아입었다. 진우와 경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있다가, 곧이어 나타난 파라드의 모습에 입을 벌렸다.

“파, 파라드. 나올 거면 미리 말하지 그랬어.”

“다른 이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에게 나온 버그스터라니. 절대 두고 볼 수 없어.”

“어, 그러니까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일목요연하고 요약 설명해주실 분?”

“저기 명호한테서 튀어나온 애랑 저기 은설이랑 둘 다 버그스터예요.”

“지나치게 요약했잖아요!”

“놀랄 거리 하나 더 있는데. 나도 버그스터고 저어기 게임기 안에 있는 양반도 버그스터거든요.”

세한이 손을 뻗어 CR 구석에 놓인 게임기를 가리켰다. 진우는 눈을 끔뻑이다가 어슬렁거리며 게임기 쪽으로 다가갔다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게임기 화면에는 보라색 세로줄 몇 개가 감옥 창살처럼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철창 근처를 서성이는 남자가 보였다.

“뭐야. 이 사람, 겜마 코퍼레이션 전 사장 현도현이잖아요? 이 사람 분명히 죽었을 텐데.”

“기록상으로는 그렇죠. 뭐, 그거는 나도 마찬가지고.”

세한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선글라스를 꼈다. 진우는 침묵하다 게임기 안의 도현을 바라봤다. 도현은 팔짱을 끼며 흥미롭다는 듯 진우를 올려다 봤다. 사람의 뇌를 멋대로 조작하려는 이들은 여러 번 만났고, 별의별 인간들을 다 봤다지만, 게임병 바이러스로 소멸 혹은 실종한 이들이 되살아났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그게 만약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라면.

인간의 모든 정보를 0과 1로 남길 수 있는지를 고사하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인간을 데이터로 옮겼을 때 어떤 것이 ‘버그’로 판명 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있는 질병이 ‘버그’로 판정되어,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희귀병 치료에도 상당한 진전이 가능할 터였지만 진우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수단은 목적과 결과보다는 근본과 과정을 더 고려하고 사용해야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그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이 있었던 사건을 진우는 떠올렸다. 의도와 목적은 사람의 목숨보다 우선할 수 없다.

“만나서 영광이군. 한진우 박사. 소문은 많이 들었다.”

“날 말입니까? 허, 이것 참 예상도 못 한 곳에서 내 팬을 만나네.”

“그거 사탕발림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명호가 옆에서 속삭이자 진우는 ‘그 정도는 안다.’고 말했다. 경희 역시 진우와 같은 굳은 얼굴로 게임기 속의 도현을 응시했다. 재생되는 영상은 아닌 듯했다. CR이 이런 일로 법의관 사무소를 속일 리는 만무했고, 이런 질 나쁜 장난을 칠 리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 사람이 진짜 현도현이라는 건가? 경희가 고개를 돌려 은설, 아니 뽀삐를 바라봤다. 뽀삐는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만, 이 부분은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입술을 달싹이던 뽀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뽀삐를 추궁할 생각은 없었지만, 직업 때문인지 자기도 모르게 말이 세게 나온 것 같아 경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렇다고 CR을 신고하거나 일원들을 체포할 의사는 없으니 편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지켜보던 CR의 의사들도 긴장한 듯 뽀삐를 바라봤다. 말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던 뽀삐는 결국,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이 협조하자고 한 건가. 진우는 생각에 잠겼다. CR의 입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엄연히 도현이었고, 해결책을 가장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사람도 그였을 것이다. 다만, 이 인간이, 아니 자칭 신이 도무지 조용히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알겠으니까 거, 지금 나한테 협상 거는 거예요? 내가 이 사건 도와줄 테니 나 좀 잠깐 풀어달라?”

“역시 석학답게 머리가 좋군. 만약 용의자에게서 버그스터가 나왔다면 그 흔적이 어디에라도 남았을 거고, 그 흔적은 오직 나만이 알아볼 수 있-”

“그건 저희도 알 수 있는데요. 뭐, 특별히 버그스터만 남길 수 있는 표식이나 바이러스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도 설명 들으면 대충 알거든요. 현도현 씨?”

“현도현이 아니라- 갓도현이다!”

“아니 뭔 갓도현이에요. 갓 태어나셔서 갓도현이에요? 어우, 얼굴 보니까 갓 태어나신 건 아닌 듯한데.”

“한 선생님? 흰소리 그만하시고 CR 분들이랑 현장 가야죠. 늦었어요.”

“아이, 알았어요. 그만 말하라는 거죠? 알겠어요. 아무튼. 저기 저 ‘갓’도현 씨 도움은…… 지금으로서는 딱히 없는 것 같고, 정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말할게요. 자, 일단…… 달링. 우리 차 몇 인승이었죠?”

“5인승에서 6인승이요.”

다, 달링? 뽀삐와 CR의 의사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술렁였다. 그러나 술렁이는 것도 잠시, 뽀삐가 인원을 배정했다.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세한과 뽀삐는 먼저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고─물론 경찰들이 놀라지 않게 사람이 없을 만한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파라드는 명호 안에 들어간 뒤, 인준과 진우, 그리고 경희와 함께 피해자의 집과 인근을 수색하기로 했다.

“나는 데려가지 않는 건가?”

“어…… 겜마 사장님은 여기를 지키는 게 임무예요.”

“흐음? 그런 임무 바란 적 없다만?”

“그래도 이게 되-게 중요한 임무니까 여기 좀 지켜주세요. ……아, 맞아. 본인을 ‘신’이라고 했던가?”

“그랬다만.”

진우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려다 뒤돌아 게임기 쪽으로 갔다. 도현은 꺼내 달라고 거래를 거는 걸 포기했는지, 의자에 앉아 가만히 팔짱을 꼈다. 게임기 화면을 한 번 두드리듯 건드린 진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쪽이 내가 아는 그 신이라면, 난 그거거든요. 신이 낸 퀴즈를 푸는 사람. 그쪽이 뭐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다양한 신 중 하나면 게임의 신인가? 아무튼.”

경희가 진우를 돌아봤다. 명호도 진우의 등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하고 진우가 검지를 펼쳐 도현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그 게임 아주 보란 듯이 풀 거니까. 여기 아주 잘 지켜야 합니다? 당신 도움 없이도 나 초천재 한진우가 풀 거라고요. 알겠어요?”

진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절대로 이 사람에게는 도움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손가락을 내린 진우는 홱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경희는 그런 진우의 뒤에 섰다. CR의 의사들은 말없이 도현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뽀삐와 세한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명호와 인준만이 말없이 그 둘 뒤에 섰다 엘리베이터에 탔다.

“아니 왜 이렇게 어색하게 굴어요?”

엘리베이터가 닫히자마자 진우가 입을 열었다. 진우의 눈치를 보던 명호가 입을 뻐끔거렸다.

“기분, 상하신 건 아닌가 해서요. 도현 씨 때문에.”

“아, 그거. 뭐, 상했다기보다 뭐랄까. 조금 약이 올랐거든요. 근데 신경 쓰지 마요. 그것보다 강 형사님.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린다고요?”

“약 한 시간 반이요.”

“좋아쓰. 그럼 명호 씨 나 여기 병원 식당 좀 가봅시다.”

“네?!”

진우가 명호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지 말고 좀 소개해 줘요. 배고프면 내가 머리 회전이 더럽게 안 되거든요.” 능청맞은 진우의 행동에 명호는 당황했고 인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면 그렇지. 숨을 옅게 내쉰 경희가 진우의 등짝을 때리고 나서야, 진우의 병원 밥 타령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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