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촬 HL 1일 전력'에 올라온 '러브레터'를 주제로 쓴 글입니다. 가면라이더 포제의 일부 스포일러와 캐릭터 붕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3학년 B반 뒷문은 학생들이 하도 여닫아서 닳을 지경이었다. B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반 학생들과 다른 학년 반의 학생들까지 B반을 드나드는 탓에, 담임인 오오스기는 혼자 끙끙 앓고는 했었다. 오오스기는 물론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바로 3학년 B반의 문제아…… 중 하나가 아니라 가면라이더부에서 가면라이더로 활동하고 있는 사쿠타 류세이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류세이는 다른 학교에서 반년 간 교환 편입을 와서 다른 학생들의 관심을 한 번에 받게 되었다. 그것도 시간만 지나면 사라질 터인데, 류세이는 하필 우등생에 미남이라 시간이 지나도 관심은 끊이지를 않았다. 덕분에 3학년 B반은 류세이를 짝사랑하는 학생들의 성지가 되었고, 오오스기는 반 내에서 도난 사고나 기물파손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안 그래도 가면라이더부의 고문 문제나 수업 준비로 머리가 빠질 것만 같은데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던 오오스기는 류세이에게 이 건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았지만, 도리어 머쓱한 투로 사과했다. 사실 스바루보시에 있을 때 신발함이나 사물함에 자물쇠를 건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자물쇠가 사라지거나 박살이 나서 포기하게 됐다고 했다. 그건 범죄 수준 아니냐. 그렇게 되물으니 류세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피곤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사물함엔 뭘 잘 안 둬요. 집이나 래빗 해치에 두는 게 더 안전하기도 하고……. 웬만한 건 들고 다닙니다. 혹시 저 때문에 사고가 나거나 다른 애들이 피해를 보면 변상할게요."
류세이가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과한 탓에 오오스기는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탓할 생각은 없었다. 뭐, 인기 많은 게 어디 류세이가 원해서 생긴 일인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오오스기는 자괴감에 멜빵끈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어쨌든, 뒷문을 막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오오스기는 한동안 큰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토모코는 수도 없이 고민했다. 구태여 편지를 쓸 필요는 없었다. 말로 고백하는 방법도 있었고, 선물을 주면서 고백하는 방법도 있었다. 류세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선물을 전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을 터였지만, 토모코에게는 울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서 고백할 재주나 특별한 선물을 고를 안목이 없었다. 토모코는 류세이의 취향과 자신의 취향이 상반되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와 같이 오컬트 마니아가 아닌 이상, 토모코는 자신과 취향이 일치한 사람을 찾기 힘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토모코는 글 쓰는 것엔 자신이 있었다. 중학생 때도 종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탔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난 글을 잘 쓴다.'고 내세울 수 있었다. 우선 편지지와 봉투를 구해야 했다. 토모코는 항상 류세이와 하교했는데, 하교하는 길에 샀다가는 류세이에게 들킬 게 뻔했다. 어차피 류세이에게 전할 예정이긴 했지만, 완성된 러브레터를 전하기도 전에 들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류세이에게 적당한 이유를 들어 오늘은 혼자 하교하겠다고 말할 심산이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혼자 돌아가겠다고?"
"네. 오늘은 혼자 가도 괜찮을 거 같아요."
"……토모코의 감은 믿을만 하니까. 아니다. 같이 가자. 안심이 안돼."
류세이는 팔짱을 끼더니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얼굴까지 확 찌푸린 것이 마음을 돌릴 마음이 0.0001%도 없어 보였다. 토모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토모코가 다크네뷸라─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메테오의 상태를 관리하는 인공위성 M-BUS였다.─에 다녀온 이후로 류세이는 토모코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토모코가 부담스러워할 것을 알았는지 같이 하교하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한 모양이었지만, 토모코에게는 그조차도 무거웠다. 토모코는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오늘 약속이 있어서 그래요."
"약속?"
"네. 같은 반 애랑 어디 놀러가기로 했거든요."
"같은 반 애?"
그래도 류세이의 의심은 풀리지 않은 듯했다. 여차하면 같은 반 애의 이름까지 대라고 할 판이라서, 토모코는 손을 모으고 류세이를 째려봤다. 류세이는 그제야 자세를 풀고 알겠다면서 먼저 돌아갔다. 토모코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편지지와 봉투를 골라 집으로 돌아갔다. 최대한 자신인 게 티가 나지 않게 밝은 색의 편지지와 봉투를 골랐고, 필체도 다르게 쓰려고 노력해봤다.
고백할 자신은 없었지만, 계속 눌러둘 자신도 없었다. 담아두었다가는 언젠가는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풀어놓을 곳이 필요했다. 류세이에게 고백하는 게 그 방법이었다. 류세이는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고백을 받았으니, 익명의 인물에게 고백을 받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터였다. 비겁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토모코는 류세이가 자신을 친구나 후배, 동료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이 관계에 만족하지 않는 건 토모코뿐이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감정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류세이가 아니라 토모코였다.
토모코는 노트에 한 번 감정을 정리해보았다. 도대체 사쿠타 류세이라는 사람을 언제부터, 왜 좋아하게 된 것인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토모코는 침착하게 써내려갔다. 류세이가 반 조디아츠 동맹의 스파이로 아마노가와에 잠입했을 때만 해도 토모코는 류세이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토모코는 류세이가 가면을 쓰고 부원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류세이는 토모코가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토모코는 '메테오'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두어 번 정도 치고 생각에 잠겼다.
류세이를 좋아하게 된 건 류세이가 가면라이더 메테오였던 덕도 있었다. 토모코는 어느 시점부터 나타나서, 조디아츠를 무찌르고는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메테오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포제와 싸우는 법도 달랐고 싸우는 이유도 달랐다. 류세이 선배가 메테오인 걸 알고 나서야 메테오가 혼자 싸우던 이유를 알게 됐지. 토모코는 작게 웃었다. 지금은 '메테오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메테오이기도 한' 류세이를 좋아한다. 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말이다.
토모코는 현재도 불가사의한 마음을 최대한 그러모아 적었다. 막연하게 고백하자고 다짐했을 때는 가슴이 아릿하기만 했는데, 막상 쓰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토모코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만면에서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어쩌면 이런 감정이야말로 진정 사랑일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이 겐타로가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하는 청춘의 옆얼굴일지도 모른다고 토모코는 생각했다.
다 쓴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은 토모코는 가방 한구석에 편지를 넣어놓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점신시간, 점심을 급하게 먹은 토모코는 편지만 덜렁 들고 3학년 B반 교실로 향했다. 다른 반 학생이라 좀 찔리기도 했지만 류세이의 책상─다들 사물함에 넣는 모양이었지만, 토모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책상에 두고 오기만 하면 어찌 되었든 목적 달성 아니던가.─에 편지를 놓고 다른 건 건드릴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3학년 B반 앞에 도착한 토모코는 뒷문에 손을 얹자마자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대로 문을 연 토모코는 얼어붙고 있었다.
반에 홀로 남은 류세이가 편지를 읽으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사물함은 열려 있었고, 류세이의 손에는 읽고 있는 편지 말고도 몇 개의 편지가 더 들려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류세이가 뒤돌았다. 토모코는 손에 쥐고 있던 편지를 구겨 등 뒤로 숨겼다. 류세이는 황급히 자기가 읽던 편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토모코에게 다가왔다. 류세이가 입을 열기 전에 토모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겐타로 선배는요?"
"아……. 켄고 몸 상태가 안 좋대서. 양호실에."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토모코는 그대로 뒤돌아서 뛰기 시작했다. 눈물은 흐르진 않았다. 흐렸던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은 동시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하기도 했다. 1층 중앙계단 뒤에 있는 자판기 옆 쓰레기통에 구긴 편지를 버리고 나서야 토모코는 편지와 함께 생각보다 많은 것을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토모코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류세이는 당황해서 멀뚱거리고 있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토모코의 뒤를 따라갔지만 토모코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학생들에게 물어 물어 토모코의 마지막 흔적을 찾았는데, 토모코의 머리핀이 중앙계단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학교도 끝나지 않았으니 토모코가 어딘가로 증발했을 리는 없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숨을 쉬던 류세이는 투덜거리며 쓰레기통을 들고 가는 학생을 발견해 붙잡았다. 순간 쓰레기통 맨 위에 있는 구겨진 봉투를 봤기 때문이었다. 토모코가 3학년 B반 뒷문 앞에 서 있었을 때 쥐고 있었던 걸 얼핏 본 것 같았다.
학생은 류세이가 붙잡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류세이를 바라봤다. 아, 그래. 그랬던 거구나. 류세이는 자기도 모르게 빙긋 웃었다. 류세이는 손을 뻗어 편지를 붙잡았다. 학생이 뭐하냐는 거냐면서 제지했지만, 류세이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손을 내저었다.
"그거, 내 거야."
"……응?"
"내 거라고, 이거. 가져갈게."
류세이는 그대로 편지를 가지고 반으로 향했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어제 홀로 하교하겠다고 급구 류세이를 먼저 돌려보냈던 이유까지 맞춰지기 시작했다. 거의 달리다시피 하며 반에 도착한 류세이는 다른 편지들을 제쳐두고 토모코의 구겨진 편지를 다림질하듯 손바닥으로 잘 펴서 읽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토모코가 쓴 편지인 것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편지였다. 아닌 척을 해보려고 한 모양이었지만, 하늘색 봉투 안에 든 파스텔톤 보라색의 편지지에 정갈한 글씨체는 토모코의 센스가 담겨있었다. 류세이는 얼른 첫 줄로 시선을 옮겼다. 고백 편지는 수도 없이 읽었고, 고백할 상황에서 나올 법한 말이야 뻔했다. 이젠 한 문장만 읽어도 대충 뒤의 내용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류세이 선배. 저번주에 다쳐서 생긴 상처는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에는 류세이를 향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류세이는 제 입술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 역시 침착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중간에 조금 떨렸던 모양인지 글씨가 흐트러진 부분도 보였다. 물결을 손끝으로 느끼듯이 평온하면서도 어딘가 떨림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모두들 류세이에게 고백할 때 '첫눈에 반했다'든가, '당신의 이런 모습에 반했다'라고 했지만 이 편지만큼은 달랐다. 토모코는 류세이에게 결코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고 했고, 오히려 첫인상은 최악이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적힌 문장에 류세이는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바로 다음 내용에 '그렇지만 류세이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또 알아가면서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적혀있어서 류세이는 다시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부분은 쓴 사람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인지 생략되어 있었지만 류세이는 숨긴 내용까지 알 수 있었다. 바로 메테오의 존재였다. 류세이도 메테오의 존재가 토모코의 안에서 너무도 커서, 다른 사람이 메테오였다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토모코는 편지에서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이 편지의 결말이었고, 그것이 고백이었다.
류세이는 부드럽게 웃으며 편지를 다시 접어 가방에 넣었다. 학교가 끝나고 래빗 해치에서 마주치면 토모코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슬퍼하거나 풀이 죽어 있으면 달래주고, 당황하면 웃어줘야지. 쓴 사람이 보낸 적 없는 편지에 언제 답을 돌려줄지는 미지수였지만, 류세이는 언젠가는 기필코 돌려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을.